지번(Lot)/ 2026
과거에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투적인 수식어였다. 일번지는 행정구역의 경계에서 대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패션 일번지, 정치 일번지, 코미디 일번지 등 가치를 부여하거나 특색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였지만 이미 오래 전에 사장된 관용어이다. 미디어의 공간으로 분산되었으니 밀도는 낮아지고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요즘 유명세가 있는 곳들을 무엇으로 특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막연한 소비복합적인 조건을 갖고, 언제 그 흐름이 이동할지 알 수 없다. 물리적인 구획이 온갖 ‘길’이 성쇠하는 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새로운 것이라도 어제의 날짜가 찍힌 신문은 그 무게가 가볍다. 지하철 선반 위에서 무심히 내려보던 뻣뻣한 존재감도 당일까지였다. 하지만 얇은 종이에 찍힌 글자의 무게는 가볍지만 않았다. 필요하다면 스크랩하여 보관하고, 공공기관은 여전히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 장기기록물로서 보존한다. 그것은 불시에 날아가버릴지 모르는 불안이다.
가치가 있는 것은 실체로서 보증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의 파편화된 이미지는, 휘발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가치의 증발이다. 수많은 관공서가 들어선 곳이 유령도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요란했던 수사와 달리 실체 없는 삶이 존재하는 곳이다. 지인은 수년째 임대차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의미없는 지번 대신 선명한 겨냥대를 세우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간판을 필름에 새기듯 손수 써내려간다.
- 2026 두 개의 겨냥대, Label Gallery,서울
.jpg)
.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