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사탕(Carbón Dulce) / 2023-2026
조카가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눈 판 사이에, 맨 아래 서랍을 열고서 정돈되어 있던 인스턴트커피를 꺼내어 어질렀다. 처음 있는 일이다. 별것 아닌 그 일에 나는 정말 기뻤고 크게 웃었다. 삶의 시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완전무결로부터의 해방이다.
폴 리쾨르는 악의 기원을 ‘흠’으로 보았다. 접촉과 관계형성의 과정에서 질서를 깨뜨린 죄책감이 윤리적 태도를 형성한다고 했다. 그는 종교적 상징의 범주에서 ‘흠’을 씻어내어야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실재의 삶에서,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흠은 불가분하다. 그래서 완전한 삶은 적어도 그것을 포함한다. 조카의 무심한 표정처럼 깨진 질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오히려 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윤리가 강박이 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정화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말라가에 갔을 때, 시기가 맞지 않아 볼 수는 없었지만 지인으로부터 겨울의 종교축제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석탄모양의 사탕(carbón dulce)에 관한 이야기였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이가 까매지도록 준다고 했다. 그러나 달콤함에는 변함이 없다. 흠 역시, 입안 가득한 신성의 영역에 있다.-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