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다양한 삶은 공통된 구조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나는 사진을 매개로 그 구조를 발견하고 기록한다. 삶의 흔적은 사회문화적 가치와 교차하며 인덱스로 남고, 때로는 보편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작업은 일상의 구조를 수집하고, 밀도 높은 교차점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진다. 같은 사람이 없지만 비슷한 삶은 반복된다. 나는 그 반복 속에서 감응과 구조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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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의 말 :
황학동 만물시장에서 시작한 간판기록의 연속과 확장

중고재래시장의 지역성을 소재로 시작한 작업이다. 간판은 서체 중심의 조형성과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단어의 집합을 통해서 고유한 특색을 드러낸다. 이를 계기로 분단의 현실을 탐색한 《평화와 통일》 작업이 이어졌고, 동시에 손글씨 간판도 꾸준하게 수집하고 있다. 누적된 작업은 Label Gallery에서 개인전으로 정리되었고, 이후에 협업을 통해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작업의 경계를 확장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기존의 기계적인 반복에 머물지 않고, 이미지전사 기법과 주목하지 않던 소재를 활용하게 되었다. 전사를 이용한 《비늘》과 플라스틱백을 이용한 《헐렁한 점퍼》 등, 문자에 기반한 보다 적극적인 조형 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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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되지 않는 것들:
비선형적 시간으로부터 생태윤리적 감각으로

박경리 선생님의 시 「대추와 꿀벌」에서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도시의 식물과 인공물이 뒤섞인 풍경을 기록했다. 추상적인 개념과 정서를 구체적인 대상과 상황을 통해 탐색해왔다. 생명과 죽음, 주체의 형성과 해체에 대한 감각적 수용은 작업의 중요한 축이 되었고, 여기에 사진의 존재론적 태도에 대한 고민이 더해지며 작업은 유기적인 구조를 발견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그 방향은 점차 거대한 관념으로부터 일상적인 감각으로 수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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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구조 :
사건의 기록과 유형의 발견

도심의 적산가옥을 기록한 작업이다. 충무로는 지명과 달리 역사의 정취로 인식되는 곳이기도 하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역성의 인식도 달라지고, 점차 긴밀해지는 연결망은 경계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확장한다. 지역성이 희미해지면서 동시에, 구조의 보편적 특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유형의 흐름을 따라 기록하고,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엉킨 실타래, 달항아리


타임머신은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기억을 중심으로 세상은 그때그때 재구성된다. 객관적 사실이랄 게 없어서 그 기계는 쓰임이 없다. 시작도 없고 완결도 없다.

간판을 촬영한다고 할 때, 포트폴리오 상으로는 2007년 '만물시장' 이 시작인데, 그건 결과였다. 원인일 수도 있고. 사실은 10년 전, 1997-8년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왜 쓸데없이 설명문이나 이정표 같은 거를 찍어왔냐고 엄마한테 핀잔을 들었다. 그때도 사람은 잘 안 찍었다. 또 10년 전, 1986-7년에 엄마 손 잡고 남부시장 건너 편의 상가 대로변을 걸으면서 쉬지 않고 간판을 읽어댔다. 엄마는 칭찬을 하다가 힘들었는지 그만하라고 한다. 당시의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엄마는 사진 같은 것에 미련이 없다. 원주로 이사오면서 다 잃어버리고, 돌인지 백일인지 하나 남은 사진도 어디 있었는데 무당이 나 일찍 죽을 수 있다고 해서 거기 갖다주었다고 했다. 아빠의 나이를 넘었으니 효과는 있나보다. 실은 나도 그렇다. 필름을 통째로 잃어버렸을 때도, 원본 디지털파일을 날려먹어도. 다시 찍으면 된다. 세상을 특정한 사건의 연속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재구조화의 연속으로 느끼고 있다. 나는 추상적으로 얘기를 하면서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슬슬 기미가 보인다. 어쨌든 실타래처럼 줄줄이 풀어내는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달항아리처럼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를 뿐이지, 사실 모양새는 같다. 제목을 정한 이유이고 내가 받는 인상 같은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하학적 '원'을 인식하도록 지어졌다. 게슈탈트적 세계,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족쇄는 아닐까. 이상과 현실 그 사이의 무력함이 있다.

사진을 모두 잃어버린다고 해도 고달픈 일이지, 다시 못할 일은 아니다. 계명대학교 이주형 교수님의 혼합매체실기 수업이었을 것이다. 필름에 직접 흠집을 내어서 표현을 확장하는 과제였다. 패션대학에 마네킹이 보관되어 있는 곳을 지나다가 창을 통해 촬영을 했었다. 문은 잠겨있고 출입이 잦은 공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작은 창을 통해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다른 구도의 가능성은 없었다. 필름에 흠을 내어서 제출했지만 흠을 내어서 좋은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을텐데 모두 긁어서 제출했다. 나는 다시 찍으면 된다고 했다. 교수님은 똑같은 것을 촬영할 수 있다면, 최고점을 주겠다고 하셨다. 대부분 좋지 못한 성적인데 이 수업의 성적이 잘 나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촬영 당시의 극히 제한된 조건을 알고 있으니 할 수 있다고 했다. 여전히 문은 잠겨있고 똑같은 자리에서 카메라로 바라봤지만 마네킹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나는 같은 사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단지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구성이 없을 뿐이지 그 창고 방은 여전히 잠긴 채 마네킹이 세워져 있다. 다를 게 없었다.

연결고리가 없다. 꿈이 없었으니, 어디에도 없었다. 국민학생 시절에 과학자 정도는 써내었지만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사진을 전공하게 된 것은 모델이 예뻐서 신청한 학습지의 부록 때문이다. 거기에는 유망직종을 소개하는 란이 있었다. 이벤트기획과가 있어서 재미있겠다 싶었고 관련 전공에 사진이 있었다. 대강 열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진이 나은 것 같다. 학습지는 새것처럼 쌓여있었는데 답지가 터무니 없는 오답을 가리키고 있어서 어느 날부터 신뢰를 할 수 없었다. 학습지도 얼굴만 봐서는 안 된다. 물론 다른 학습지도 열심히 푼 건 아니기는 했다. 나는 흥미를 가질만한 것을 찾기 어려웠고 집에는 35mm 삼성자동카메라 한 대가 있었다. 사실상 카메라도 없이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난 별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도 그냥, 하던 일이니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나는 엄청 열심히 하지도 않지만 잘 그만두지도 않는다.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학사경고로 꽉 채우고 군에 입대했다. 복학일정 때문에 해병대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갔다. 당시에 육군 지원자가 많아서 2월에 입대했다. 자대배치를 받고 성격란에 '내성적인듯 뻔뻔함'이라고 써냈으니 엄마의 만류가 맞았다. 오지의 생활은 경험하지 못할 감각을 일깨웠다. 감은 눈보다 깜깜해서 손으로 뜬 눈을 더듬거리던 일, 체감온도가 영하 45도쯤 되면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서로 마주보며 소리내어 웃는 현상, 졸음이 쏟아지기 전에는 항상 팔이 차가워지기 시작한다는 것. 해질녘의 단풍 그리고 밤하늘에 별이 빼곡하다는 사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야간투시경으로 보면 정말로 빈틈이 없다. 그 이후로 이런 감각은 더 이상 없었다. 유람이나 식도락에 흥미가 없는 이유는 어쩌면 군생활 때문은 아닐까. 나는 찐밥이랑 흔한 반찬들도 맛있게 잘 먹었다. 삽질 열심히 하면 다 맛있다. 아빠는 옛날 대구 사람인데, 천자문을 가르치고 어린이날에 ‘이야기 논어’ 뭐 이런 것들을 선물로 주었다. 센스가 있는 편은 아닌. 그건 엄마가 잘 안다. 앞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것을 이해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천자문도 익히다 말았고. 그건 방향이었다.

채근담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118번, 진기한 것에 경탄하고 이상한 것을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원대한, 식견이 없으며, 외롭게 절개를 지키면서 홀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지조가 없다. /채근담 최현 옮김' 감각의 임계치가 높은 것인지 무감각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하게끔 만든 것만큼은 알것 같다. 나는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갖고, 진부한 사진을 찍고, 유치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판에서 저 둘은 병존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였는지도. 나는 내 작업들이 눈길을 끌지 못한다고 느끼고는 하는데, 구도나 대상을 선택할 때 드라마틱한 구성을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경향에도 영향을 주고 있을 수 있다. 복학 후에 남들처럼 반년 정도 열심히 했다. 그래봐야 지각을 좀 덜하고 숙제를 잘 해가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셀프포트레이트였을 것이다. 참고 사진을 함께 보고 흑백사진을 인화해서 제출해야 했다. 과정이랄 것도 없이 푼크툼을 너무 쉽게 알아버렸다. 나의 등에 있는 얼룩 같은 갈색의 점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잊고 있었다. 점이 있다는 사실을. 정리 안 하고 너저분하게 있으면 엄마는 어딘가 있을 아빠를 소환하곤 했는데 지금도 가끔 그런다. 점은 약간 옆구리 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들었다. 나는 그런 것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가능하면 의도적으로 불편한 느낌의 사진을 피했다. 불편함이라고 했지만 롤랑바르트가 언급한 푼크툼과 다를 바 없었다. 코드화 될 수 없는 그 무엇은 결국, 작업의 면죄부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진적 방법이니까 필요하면 잘 쓴다. 이런 경향은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학부에서는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다른 표현방식들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푼크툼을 이용하기도 했었다. 그런 와중에 도피하듯 진학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굳이 사진으로, 사진이 아닌 것처럼 보일 이유가 없었고 어물쩡 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근대 사진가들이 도달한 기술적 완성의 시기에서 분기점을 찾았다. 사진은 순간의 극명한 기록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달리 보면, 현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의심하게 만든다. 그것은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그들이 이룬 것은 기술적 완성을 통해 개념적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달항아리로부터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완전한 비대칭, 제각각의 구심점으로 만들어진 형상과 폐쇄된 계, 거기엔 변화의 방향성이 없다. 단지 재조합만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반드시 기하학적 인식을 전제로 완성할 수 있는 세계이다. 그래서 합치되지 않는 둘 사이의 불균형을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 글은 작업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작업을 이해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작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입에 익지도 않고 뭔가 불편해서 ‘사진 찍는다’ 고만 해왔다. ‘나의 작업’이 아니라 ‘나의 사진’이었다. ‘작업’은 단지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고 태도와 방향, 관계가 포함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추상적인 말들은 선언하듯 들릴 수가 있어서 피했고, 작업과 그 결과물은 반드시 뚜렷한 결속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미루어왔다. 하지만 몇년 사이, 여러 공모에 지원하고 포트폴리오 리뷰를 다녀오고서 적극적으로 작업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떠한 경계, 주변부에 있는 느낌이었다. 말재주가 좋지 못한 탓이 크지만 혹시,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진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나의 일시적 절망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삶의 태도는 작업과 구분할 수 없고, 매체는 본질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갖는다.
사진은 어떠한 매체보다 시간과 공간을 직접적으로 이용한다. 종종 사진과 영상을 편의에 따라 한데 묶지만, 두 매체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영상은 원인과 결과의 서사적 구성을 따르고, 편집의 과정은 시공간의 좌표를 지우고 독자적인 시공을 창조한다. 그래서 형식상 회화처럼 하나의 구성된 세계이다. 결과적으로 영상은 시공간을 표상하는 것이지, 그것을 직접 다루는 매체는 아닐 수 있다.
사진의 시공간 감각은 분명한 물리적 현실 위에 매여있다. 기초적인 역학이 작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 사회, 문화, 역사 등 온갖 관계망이 중첩된 역학적 장에서 주체는 하나의 작은 장으로서 생성과 소멸한다. 태생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계적 구조를 다루는데 특화되어 있다. 사진은 물리적 좌표를 차지하지만 단지 위치 값이 아닌, 관계 밀도가 높은 교차점이기도 하다. 또한 ‘장’은 사진의 토대이지만 쉽게 이미지 프레임의 밖으로 확장하며 형태를 모호하게 만드는 성질도 있다.
닫힌 계에서, 총 에너지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에너지는 다양한 형태로 전환될 수 있지만 전체 양은 변하지 않는다. / 열역학 제1법칙
정신역학자들은, 정신이 힘과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전이가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그들의 이론을 정립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역시, 무한의 시간 속에서 유한한 물질의 재조합을 통해 세상을 향한 긍정의 가능성과 의지를 보여주었다. 정신현상은 물리법칙과 같은 궤적을 그리며, 하나의 장으로 얽힐 수 있고 작업은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결과물은 투사의 형식을 넘어서, 구조화된 순간을 통해 개체 간 동일성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공명의 조건을 드러낸다. 공명은 각각의 실존적 형태가 다르다 해도, 반복될 수 있는 형식과 진폭을 갖는 구조적인 대응으로 발생한다.

구름 작업

'구름'. 투사 또는 구조적 동일성을 이용한 표현이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등가성의 개념을 이용하여 ‘구름’을 발표했다. 구름이 자신의 감정과 같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쩌면 투영에 가까운, 직관적이고 미학적인 접근이었다.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진사에서는 회화적 경향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작업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후에 이론가들은 구조적 동일성으로 해석했는데, 구름이 생성되는 과정과 그 형태가 삶의 굴곡을 지나던 작가와 진폭이 일치했던 것이다. 여전히 둘은 구분이 어렵지만 만약 스티글리츠와 같은 난관의 상황을 겪는 누군가 그의 작품을 통해 울림을 받는다면 공명일 수 있다. 그러나 연작 중에도 없고, 현실에서도 같은 구름은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그의 작품과 공명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직관이나 감정의 반영만 아니라, 또한 구조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 작업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네거티브밀착프린트. 완벽한 구성을 찾아 반복 촬영했다.

나는 구조적 접근방식을 비선형적 시간으로의 도약으로 이해한다.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장’을 구조화할 때, 그것은 순차적, 인과적 시간에 머물지 않고 바깥에 독립하여 존재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네거티브밀착인화가 공개되었을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 실망했을지 모르겠다. 프랑스어 제목은 ‘재빨리 찍은 이미지들’, 영어 제목은 ‘결정적 순간’이다.
나에게 있어 사진이란, 그 사건의 의미와, 그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태의 정확한 배열을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1초의 일부분 안에서 일어난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마치 눈을 깜빡이면 사진이 찍히는 것처럼, 그의 사진은 크롭조차 하지 않는 완벽한 ‘순간’의 미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밀착인화는 한 장의 완성된 사진을 얻기 위해 수많은 반복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형태, 리듬, 균형 등 형식을 중심으로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단지 형태 변화의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였고, 재조합을 이용하여 형식적 구조를 포착했다. 선형적 시간의 일부를 잘라낸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시간의 밖으로 현실을 옮기는 ‘구조적 순간’이었다. 비록 ‘결정된’ 순간이라도 브레송의 내재적인 구조를 통해서 발산하고 표현한 것이다. 형식이 내용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최적화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교차점이 필요했다. 개별 주체를 넘어선, 구조 간의 공명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순간을 찾는 일이다.

에드워드웨스톤 작업

'피망'. 사진의 형식미를 표현한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반대편에 F64그룹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회화주의적 표현에 반기를 들었던 작가그룹이다. 스티글리츠가 직관적인 작업의 가능성을 보았다면, F64는 사진표현의 극한을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었다. f64조리개 수치를 이용하여 형식적 선명함을 포함하는 명료함을 보여준다. 완벽히 통제된 기술적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의 미학적 전이, 그리고 발견이었다. 같은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사진적 가능성을 탐구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진은 이미 회화주의를 벗어나면서 내외적 구조를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역학의 장’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형식은 내용 자체가 되거나 표현방식에 그치지 않고, 본질을 찾기 위한 탐구의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베허부부 작업

익명의 조각’. 반복의 구조 속에서 개별성이 드러난다.

베허부부는 산업 건축물 사진을 행렬로 배치하여 유형을 비교하도록 했다. 각 건축물은 독립적이면서 하나의 유형에 포함되어 있고, 개체의 차이와 구조의 동일성를 반복하여 미학적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것을 ‘익명의 조각’ 이라고 했는데, 흩어져 개별화된 대상을 특정한 구조로 파악하도록 구성하여 의미를 생성했다. 이것은 단순히 기록이 아닌, 존재론적 구조로 확장할 수 있다. 차이가 없다면 유형을 발견할 수 없고 유형이 없다면 차이를 인식할 수 없다. 각각의 존재가 드러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유형을 파악하는 일이었고 그것은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은 현존재가 가장 고유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가능성이다."" / 하이데거
“타인은 나를 객체로 만든다. 나는 그 시선 아래서 자신이 아니다.” / 사르트르
주체는 흐름 속에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실존은 개별성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로 확장한다. 각 주체가 고유하게 체화하는 죽음은 개별성의 절대적인 조건이지만 유형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은 주체적이면서 또한 동일한 구조 속에 포함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끝을 인식하는 존재로서 물리적, 선형적 시간에 대한 감각은 경계를 갖는 하나의 작은 장을 형성하고, 유기적 변화를 지속한다. 개별 장은 구조를 매개로 타자와 공명할 수 있다. 경계를 넘어 접근하는 방식은 대응하는 구조로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구조를 통해 타자의 구조를 인식하고 감응한다. 달리 말하면, 주체가 스스로를 닫아 완성하려는 경향을 해체하는 동시에, 더욱 커다란 장으로 관계망을 넓혀가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것은 비파괴적, 비폭력적인 방식이자 나의 윤리적 거리감각이다. 결국 나의 주저함이기도 하고, 결코 동일할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타자와의 영원한 거리감각이기도 하다. 공명은 너의 존재 구조에 닿을 수 있는, 나의 최선이며 실존의 한 방식이다.

내 작업

사진은 이 사람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구조를 통해서 드러날 뿐이다.
조화(Artificial Flower) / 이영


가까운 것들은 가장 멀리 있다


사는 일은, 사람들 모르게 별자리를 그리는 일이다. 어디에 있을 법한 그럴듯한 삶보다 밤하늘에 펼쳐진 오리온 자리가 더 살갑다. 새벽의 엘리베이터에서 날숨에 풍기는 쿰쿰한 밥냄새, 받지 않는 몸에 꾸역꾸역 넘긴 밥술이 떠올랐다. 눈치 주는 사람 없어도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깜깜할 때 나서야 제 시간에 도착한다. 그건 먹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계단의 끝, 어스름한 하늘이 닿는 곳에 할머니의 김밥이 있다. 뭣 모르고 갔다가 간신히 버텨내곤, 다음 날에 김밥 한 줄을 샀다. 천원이었던가, 천오백원이었던가. 이렇게 팔아서야 장사가 되겠나 싶다. 욱신거리는 팔뚝으로 통김밥을 집어들었다. 아직 남은 온기를 힘겹게 벗겨내며 걸었다. 몇 시에 일어나셨을까, 고단하시겠다. 없는 입맛에 야생의 맹수마냥 거칠게 김밥을 뜯어물었다. 주먹 쥐기 힘들어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채 한줄 못 먹는 배통으론 무엇도 흉내낼 수 없었다.

그날처럼, 계단인지 하늘인지 저 멀리, 남자는 가로등을 등지고 할랑할랑 빛을 깜빡이며 다가왔다. 헐렁한 잠바가 가벼운 걸음에 날갯짓을 하는 것 같다. 까만 비닐봉지는 이백미리 우유 몇개 남았을까. 비어가는 봉지를 확인하듯 흔들리는 건, 남자의 의지였다. 멀리 가야하는데 내 차를 가로막아 놓았다. 사이드브레이크를 참 정직하게도 걸어놨다. 앞유리에 전화번호도 없다. 당황하던 와중에 혹시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 안을 살폈다. 뒷좌석 창문이 열려있는지도 모를만큼, 그 차는 투명했다. 가까이 보려다 없는 창에 부딪힐까 움찔 물렀다. 거기엔 동화책 같은 것들이 어슷하게 쌓여있고, 작은 담요가 가벼워진 초록색 우유박스 하나를 겨우 안고 있다. 나는 모른 척, 멀찌감치 그가 볼 수 없는 데까지, 마치 지나가는 사람처럼 걸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걸.

차갑게 밀어냈다. 아니다. 내가 물러난 것이지. 투명한 사람이었으니까. 얇은 바람에도 풍성하게 흔들리던 새하얀 블라우스, 긴 검정치마는 어울리지 않게도, 어긋난 팔자걸음 덕에 봄꽃처럼 화려했다. 만약. 그냥 저만치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보다 더 멀어졌으니. 너무 멀리 가서 가끔 생각이 난다. 이제, 멀어져야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온통 흐드러진다. 이미 오래 전에, 마지막처럼 굴었다. 새삼스러운 일이다.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밤새 숨을 몰아쉬었다. 잘 수 없는 밤을 품기까지 얼마나 고단했을까. 우리는 너무 가까웠는지 모른다. 다시 사람들 모르게 세상이 뒤집어져도, 나에게 생긴 변화는 고작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일이다. 흉내 내듯, 볼품 없는 내 삶이 조금이라도 투명하기를 바랐다. 진심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 여기 계속 있다. 누구든 슬프면 와도 좋다. 그게 전부였다.